문장이란 것은 조금만 다듬어도 어느새 글에서 느껴지던 습도가 달라져 금새 구조만 맞을 뿐인 무미건조한 글로 변하게 된다.
때문에 글을 처음 쓸 때의 신선함을 잃지 않기 위해 초본은 종이에 쓰는 버릇을 들이게 되었다. 이것에는 모든 것이 남는다. backspace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흔적이 새겨진다. 삭선의 고뇌까지도.
새겨진 기억은 오직 바람만이 거둘 수 있다.
카테고리 보관물: memo.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가 말하기를.
아름다운 여름이라 했다. 하하하 웃었다.
아름다운 뭐뭐는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근거없이 드네. 추함은 추함 자체로 미칠듯한 아름다움이랄까. 썩어가는 모습과 그 역겨운 냄새도 우주 균형의 아름다움이…….
예전에 미술관에서…….
예전에,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어디의 어떤 미술관인지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몇 년
전인가에. 한 미술전을 보러간 적이 있다. 유명 미술전은 아니고 어느 한 미술가가 사진이나 옷인가 위에다 유화로 그림을
그려놓거나 하는 것이었다.
음… 사진 촬영은 당연히 금지지만, 카메라 폰이 막 나올 때였는데, 한 분이 사람도 없고 한가해서인지 그걸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아… 너무 부러웠다. 그 때부터였다. 나의 망설임!! 사진을 공유해달라고 할 것인가?! 말것인가?!
전시도 다 본 터라 한참을 고민하다보니 어느새 문을 나선 그 분. 미술관을 나와 이미 골목을 돌고 있었다.
카운터에 내려가 팜플렛 가격을 물어봤는데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해서 그냥 나왔다.
나도 집에 가야겠다면 골목을 돌았다. 어랏? 그런데 한참 전에 골목을 돌은 사람이 아직도 근처에 있는 것이다. 막 지하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오, 이런 기회가?! 둘레둘레 달려가 “저기요!”하고 말을 걸었다. 단숨에 팽그르 돌며 “예?”하고 쳐다보았다.
“실례합니다. 아까 미술전에서 핸드폰으로 사진 찍으셨잖아요. 혹시 컴퓨터로도 옮기실 수 있나요?” 말하고서는 아직 일반인은 찍기만 하지 옮긴다고는 생각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며 안타까움 반.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기에 혹시 가능하면 사진을 보내주실 수 있겠냐며 노트를 찢어 내 전자우편 주소를 적어주었다.
당연하겠지만, 서신은 오지 않았다. 서신을 기다리며 생각하다보니 나의 어이없음에 절로 안타까움과 웃음이 나왔다. 설마하니, 내가 그 분 당신께 작업을 걸었다고 한것이었겠지.
그 분은 얼마나 당혹&당황 했겠는가. 머리에 피가 마른 적도 없어 보이는 녀석이 이상하게도 계속 쳐다보다가 미술관 밖에서 불러서는 핸드폰에 들어있는 사진을 공유해달라면 전자우편 주소를 적어주는 것이다.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재밌는(그리고 부끄러운) 경험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감각의 망각
2007.5.17
나는 어제(흐린 뒤 비) 샤워를 했다. 그리고 오늘(맑음)도 샤워를 했다. 갠관적으로 보기에 기온은 어제가 훨씬 낮았다.
그런데 나는 오늘 했던 샤워가 어제오늘의 샤워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지금, 더 차갑고 추웠던 것 처럼 느껴졌다.
분명 날씨는 어제가 훨씬 좋지 않았을텐데 왜 오늘이 더 차가웠던 것처럼 느끼고 있을까?
아닐 오늘이 더 강한것이 아니다. 오늘이 내 사고 속에서 덜 잊혀졌기 때문에 더 많이 남아있는 감각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만년필 #2
만년필은 매우 부드럽게 잘 나가지만 요구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종이 상성이 맞지 않으면
지나치게 번지거나 묻어나기 일쑤이다. 게다가 깨끗한 촉에 잉크가 엉키면 아름답지 않고, 번거롭다. 덧붙여, 악필이면 사용할
때마다 주위 시선 매우 부담스럽다.
하지만 부드러운걸.
고냥이
고등학생 시절에 여학생에서의 별명이 고냥이였다.
난 이 별명에 대하여 상당히 애매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불리는것에는 편했기 때문에 상당히 마음에 들었지만서도, 내 진실 모습이 아닌 것 같아 불편했다.
사람을 관찰이나 하고 있는 주제에, 사실은 냉철한 주제에, 인간이 피곤한 주제에, “이젠, 싫어…….”라고 가끔 혼자서 되풀이
하는 주제에. 그런 별명으로 불리고 있음은 나 자신이 자연스럽게 탈을 쓰고서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인가 느끼게 했고, 어둠
속으로부터 추악함이라는 단어가 스며올라 떠오르곤 했다.
그 시절이 너무 짧았기 때문인지, 내가 더욱 어렸기 때문인지,
지금와서 진실을 거부하려는 것인지, 실제로 어떠했는가는 잘 모르겠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 별명이 나의 외모와 표정 따위
때문이었는지, 행동을 비롯한 나의 전체적인 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다시 한번 고냥이라 불리고 싶어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Space Pen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과 련간의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했던 때의 일이다.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자 자극을 받은 미국은 막대한한 돈을 쏟아부어 이내 소련을 따라잡았다.
이처럼 이 우주에 목을 매다시피 하고 있을 때 한가지 문제가 떠올랐다. 우주비행사들이 무중력 상태에서 볼펜을 쓸 수 없어 우주에서 한 실험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볼펜은 세워서 쓰는 동안 잉크가 중력에 의해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며 펜 끝의 볼을 적셔 계속 글씨가 써지는데, 무중력 상태에서는 잉크가 흘러내려오지 않으므로 글씨를 쓸 수 없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NASA는 곧바로 우주공간에서도 쓸 수 있는 볼펜 개발에 착수했다.
이름하여 스페이스 펜Space Pen 프로젝트. 잉크가 든 대롱 뒤에 작은 압축공기 탱크를 달아 잉크를 공기가 밀도록 했다. 중력 대신 공기의 압력이 잉크를 펜 끝의 볼 쪽으로 밀어붙여 글씨를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얼마 뒤 미국의 우주비행사가 소련 우주비행사를 만났다. 자랑도 하고 싶고, 궁금하기도 해서 스페이스 펜을 꺼내들고 물었다.
“이거 120만달러를 들여 개발한 건데, 당신들은 우주공간에서 뭘로 기록을 합니까?”
미국 우주비행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련 우주비행사가 답했다.
“우린 연필로 쓰는데….”
어때요? 재밌으셨나요? 마지막에서 대부분이 웃지요!
하지만 만약 이 대화가 진실이라면, 실제 대화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숙연해졌을 것이고,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것과 심히
안타까움을 느낀 미국 비행사는 대면한 소련 비행사에게 사과와 함께 자신의 펜을 꼬옥 쥐어주었을게 분명합니다.
NASA가 바보라서 연필을 쓰지 않은게 아닙니다. 연필은 글을 쓸 때 가루가 생깁니다. 이 가루는 모두들 아시는바와 같이
흑연이죠. 우주선에서는 공기가 순환하게 되는데, 때문에 이 가루는 선내에서 계속 잔존하게 됩니다. 결국 그것은 선원의 호흡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뿐만 아니라 흑연이 선내의 배선과 전자 장비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 또한 결코 배제할 수 없습니다. 우주에서
기계의 오작동은 곧 죽음과 직결됩니다.
사실, 이 얘기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쓰여졌던 간에)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에 관한것이 라기보다는 소련 우주인이 얼마나 가혹한 환경에서 일했는지를 쉽게 알리는 예에 더 가깝습니다. 마지막의
말꼬리의 흐림은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그들이 잦은 기침과 호흡곤란을 겪었을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며, 수명과 건강의 상실
또한 그러하며, 왜 소련제 우주선이 그렇게도 고장과 사고, 희생이 많았는지 다분히 납득이 가능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에의 도전에 무결성을 추구하는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련은 그렇게 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소련의 우주경쟁 패인의 요인일 것입니다.
여튼 간에, 얼마 후에 이런 펜이 좀 필요할 것 같아 하나 장만하려는 중. 그리 비싸지 않더군요. 2.4~4.4k정도.
덧) 교훈 – 발상의 전환은 상황의 완전한 파악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개성은 대게 악의 강함과 비례하죠.
별로 자신이 개성 있다고 생각치는 않치만, 세월이 흘러갈수록 이 내가 얼마나 악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는건 사실이다. 흐뭇하다.
물론, 내가 얼마나 다르게 변할 수 있을까와 같은 감정이 아닐까 하지만서도. -_-
이 세상에서 나만이 진짜?
가끔 그런 터무니없지만은 아닌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도 그런것이 남 생각은 알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잠깐 ‘이 세상에서 나만이 진짜?’라는 스스로도 웃어버리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베 요시토시 관련 글을 무심코 무의미하게 끄적이다가 실감했다.
지금은 운영되지 않는, 소량의 글과 그림을 공개하던 소박한 장소.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자신만의 꿈을 조금씩 풀어놓던 무엇.
그런것이 각각의 과거에 분명히 있었음을 느꼈고, 새삼스럽게도 모든 사람에게는 걸어온 과거가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사고함을 실감한다.
이 세상은 나만이 진짜인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Abe, Yoshitoshi
실제로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꽤나 오래전의 일인듯만큼의 과거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일본 그림 웹링크를 무턱대고 쫓아가며 뒤적 거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상당히 감성적이고 마음에 와닿는 특이한 그림이 올려져있는 곳을 발견했다.
기억에 따르면그 사이트는 별로 특이하지 않았던것 같다. 맨 처음 날짜가 써있고 짤막한 문자의 글이 있었고 그림의 링크가 있었다.
아래로 갈수록 옛 그림 즉, 초기작이었는데. 처음에는 정말 일반적인 그림체였는데 최근 것으로 올라올수록 독립적인 분위기와
색채를 띄었다. 그림에서 매우 깊은 인상을 받은 나는 그곳에 있는 그림을 모두 받았다. 그러나, 미쳐 북마크를 만들지
못했고, 다시는 그 사이트에 가보지 못했다.
나중에 그 그림체의 작자가 참가한 작품을 여럿 보았는데 ‘S. E. Lain’과 ‘Nea Under 7’, ‘하이바네 연맹’이다.
다시 그와 관련된 홈피를 뒤져보았는데 그 사이트는 찾지 못했다. 아마도 그가 동인 활동을 할 때 쓰는 홈피가 아니었을까 한다.
내가 스크랩해두었던 그림은 의외로 레어였다. 사람들이 처음보는 그림 투성이였으니까. 그러고보니 일전의 정리 때 마음에 안든다고 상당 수 지워버린 것을 후회한 기억도 난다.
내가 가진 그림들이 지금도 레어는 아니다. 옛 활동시의 그림을 모아 만든 아트북도 발간되었고 다시 공개한 그림도 여럿 있기
때문에 찾는다면 찾을 수 있다. 물론, ‘천지무용’의 사사미가 오줌을 누고 있는 장면 따위는 찾을 수 없겠지만.
이 글은 무의미했다. 덕분에 글을 쓰다가 막 생각난 것이 덧붙여져서 쓰여졌었다. 하지만, 역시 그러면 안될 것 같아 잘랐다. 한참 고민하다 그냥 무의미한채로 공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