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그곳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에 불과하다.
(이하 삭제)
P.S) 아무튼 간에 재미있었다. 깨끗한 마무리.
터미널. 그곳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에 불과하다.
(이하 삭제)
P.S) 아무튼 간에 재미있었다. 깨끗한 마무리.
신변 잡기, 신변 정리중.
지금은 잠항 중.
유치원 다닐 적 어릴 때 얘기다. 이사가기 전, 큰 집에서 살아갈 때였으니 6~7살 때이다.
어머니는 항상 나를 공부를 시키셨다. 그래서 눈높이 수학도 회사에서 설정한 교육가능 나이도 2년이나 앞서서 배웠고(내가 전국에서 최초로 유치원생으로써 국민학교 과정을 밟은 아이다. 당시에 눈높이에는 유치원 교육과정이 없었다.), 이야기 책도 읽고, 문제은행도 풀었던 듯 하다. 맞으면서 배웠다. 울면서 배웠다. 산수를 배울 때 먹을 것을 볼모로 배웠고, 도덕문제에서 비맞은 태극기 처리 방법을 몰라 혼나며 울었고, 구구단을 못외웠다고 식탁 구석에 몰려 맞았다. 그런 일은 흔했다.
그녀가 말하곤 했다. “7살에 학교가면 어쩔뻔 했어? 이런 것도 모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7살에 학교에 보내달라고 한 적 없는데..”
지금 문뜩 어릴 적에 내 마음 속에 선명하게 남은 사건 하나가 생각났다.
밤 중이었다. 침대에 누워 이야기 책을 읽고 있었다. 옆에서는 어머니가 읽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읽다가 글자가 틀리면 맞는다. 맞기 싫다. 잠시라도 읽다가 멈추면 읽지못한다 의심을 받고, 추궁을 받는다. 계속 읽어야 한다. 그러다 장이 넘어가면 책장을 넘길 때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그런데 전번 장을 읽고 나서 숨을 고르지 못했다. 숨이 찬다. 목이 탔다. 결국 나는 결정했다. 한 문단이 끝나고 대사가 나오기 전에 재빨리 숨을 쉬기로 했다.
“휴~”
나도 놀랬다. 빨리 읽지 않으면.. 나는 곧바로 대사를 읽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에게 손이 날라왔다.
“여기에 ‘휴’가 어디있어!”
울었다.(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울면서 읽었다. 멈추면 매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 말 못했다. 바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겁나서 말하지 못했다.
끝없이 책을 읽고 있는데 숨고를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이해해주지 못한다. 그녀는 내가 책을 읽고, 문제를 풀고, 공부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람은 마음의 상처가 나기 매우 쉬운 존재다. 가벼운 말 한 마디에도 상처받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나의 가족은 그런 점을 모르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가족에 무관심하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물리력이 관심인 줄 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성본능을 사랑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사색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나에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진짜 교육은 하지 않았을까. 그 빌어먹을 의미없는 지식만을 쌓게 만들었을까.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 왜 그런 것을 가르쳐 주지 않고 결과론적 방법만을 가르쳤을까. 솔직히 말해 저주스럽다.
어떤 이들인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술쳐먹고 들어와서 어머니를 때려도 미워할 수 없다.’와 같은 말. 결국에는 부모님이기에 싫어도 미워할 수 없다 한다. 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에게 준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라 불리는 행위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은 너무나도 미성숙했다. 그래서 종종 마음있는 부모와 그의 아이를 볼 때마다 너무나도 부럽다.
인생살이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나의 마음 속에는 나의 나약함으로 인해 생긴 상처가 빗발치듯 하다. ‘왜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까.’,’이렇게 했었야 했는데.’,’내가 조금만 더 강인했더라면 그대항할 수 있었을텐데.’. 가슴을 죄는 듯한 고통이 나를 속타게 만들고 순식간에 슬픔의 나락으로 몰아 넣는다. 쓴웃음을 짓는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허용치 않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하지만 상처는 낫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는 한 평생 낫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도 잊혀지지 않으리라.
내가 결혼을 하리라고는 생각치 않지만 나같은 딸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아마 능력있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까 한다. 자녀교육은 내가 직접하고 싶다. 내가 직접 사고는 어떠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며, 문제가 생겼을 경우 강하게 대처하는 법을 가르칠 것이다. 나의 아이가 나같이 내면이 나약하여 자신이 행하지 못했던 행위에 대하여 마음 속에 상처가 나고, 그로인해 한 평생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자유를 가르치고 책임을 가르치며, 의지를 내세우고 의지에 맞설 수 있는 강인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하지만 강요해선 안되겠지. 자유, 정의.
정말이지 나같은 딸 아이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이건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