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보관물: 추억

미안해

  잊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만 잊혀져만 가는걸까. 인간의 의식은 왜 육체에 얽매혀 있는걸까. 미안해, 나의 사물아. 미안해요, 나와 만난 이들이여. 자꾸만 잊어서 미안해요.
  분명 무언가 의미가 있어 이 한구석에 녀석을 놓았을텐데, 이제는 아주 관련된 아주 짧은 정보만이 떠오를 뿐. 그래서 ‘아… ‘필요’없구나’ 싶어 하나둘 정리해나지만, 자꾸만 미안하기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더욱 생각한다. 또 생각한다. 흐리흐리한 이유들이 떠오른다. 이 녀석은 왜 여기 있을까 어떤 녀석일까하는 이유들. 하지만 모아둔 이유만은 기억나지 않아. 마침내 제 손으로 일찍이 떠났어야할 다음 세계로, 분해와 안식의 길로 이제와서야 내팽개친다. 그렇게, 문을 열기 위해 보관한 열쇠를 어디의 열쇠인지조차 잊어버린다.
  가끔 우연히도 잘 맞춰내서(이유를 모르고도)나, 조금 특별해서 여러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다. 나를 그 때 그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게 해준다. 사물과 함께 해온 나의 기쁨, 즐거움, 아픔. 진하게 묻어나온다. ‘그나저나 이 물건은 왜 놔두었을까?’ 다시 의문은 떠오르고, 일단 나는 아직은 문을 열 수 있어 기쁘니 자리가 부족하지마는 다시 고이 잠재운다. 언젠가는 이 열쇠도 어느 문인지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다. 단지 열쇠기 때문에 보관한 것인지, 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이미 구별하지 못하니까.
  미안해요. 모두들. 나는 잊고 싶지 않아요. 모두와 나눴던 대화, 웃음, 슬픔 그리고 분노 조차도, 그저 담담히… 아픈 가슴과 목언저리를 붙잡고서 한 발식 내딛고 싶은데, 이 우주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의식도, 사물도 세월이라는 우주 팽창에 따른 세월의 무게는 견디지 못합니다.

예전에 미술관에서…….

  예전에,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어디의 어떤 미술관인지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몇 년
전인가에. 한 미술전을 보러간 적이 있다. 유명 미술전은 아니고 어느 한 미술가가 사진이나 옷인가 위에다 유화로 그림을
그려놓거나 하는 것이었다.
  음… 사진 촬영은 당연히 금지지만, 카메라 폰이 막 나올 때였는데, 한 분이 사람도 없고 한가해서인지 그걸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아… 너무 부러웠다. 그 때부터였다. 나의 망설임!! 사진을 공유해달라고 할 것인가?! 말것인가?!
  전시도 다 본 터라 한참을 고민하다보니 어느새 문을 나선 그 분. 미술관을 나와 이미 골목을 돌고 있었다.
  카운터에 내려가 팜플렛 가격을 물어봤는데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해서 그냥 나왔다.
  나도 집에 가야겠다면 골목을 돌았다. 어랏? 그런데 한참 전에 골목을 돌은 사람이 아직도 근처에 있는 것이다. 막 지하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오, 이런 기회가?! 둘레둘레 달려가 “저기요!”하고 말을 걸었다. 단숨에 팽그르 돌며 “예?”하고 쳐다보았다.
  “실례합니다. 아까 미술전에서 핸드폰으로 사진 찍으셨잖아요. 혹시 컴퓨터로도 옮기실 수 있나요?”  말하고서는 아직 일반인은 찍기만 하지 옮긴다고는 생각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며 안타까움 반.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기에 혹시 가능하면 사진을 보내주실 수 있겠냐며 노트를 찢어 내 전자우편 주소를 적어주었다.
  당연하겠지만, 서신은 오지 않았다. 서신을 기다리며 생각하다보니 나의 어이없음에 절로 안타까움과 웃음이 나왔다. 설마하니, 내가 그 분 당신께 작업을 걸었다고 한것이었겠지.
  그 분은 얼마나 당혹&당황 했겠는가. 머리에 피가 마른 적도 없어 보이는 녀석이 이상하게도 계속 쳐다보다가 미술관 밖에서 불러서는 핸드폰에 들어있는 사진을 공유해달라면 전자우편 주소를 적어주는 것이다.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재밌는(그리고 부끄러운)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