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memo.

미디어 양화법 한국에서 실현 돼…….

  요새 포털 사이트에 대한 정부와 주요 신문계의 일방적인 공격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아무리 지금 옳은 말을 하고 있어도, 발단이 된 계기가 정부와 주요 신문계의 이미지 손상 및 금전적 손해에 관한 문제였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그들 생각이 빤히 보인다. 포털 사이트 따위가 정부 활동을 방해하는 요소를 생산할 가능성을 모두 제거하고 요즘 유행하는 저작권 공격으로 개줄을 손에 꼭 쥐고 있으려는 심산[footnote]http://imnews.imbc.com//news/further/culture/2189743_2901.html[/footnote]이 아닌가?

  미디어 양화법:  미풍양속을 해치고 인권을 침해하는 표현을 단속하는 법률[footnote]Hiro Arikawa, <<도서관 전쟁>>, 민용식 역 (서울: 대원씨아이, 2008), p. 13.[/footnote]로 히로 아리카와의 소설 <<도서관 전쟁>>에 쓰인 가상의 법률이다.

……매스컴에 대한 방송금지 혹은 정정명령, 인터넷 프로바이저에 대한 삭제 명령 등으로 단속이 실행된다.
  원래 미디어 양화법 성립 이전에 반발해야 했던 매스컴은 정부 발표를 저지하지 않는 형식적인 보도와 겉모양뿐이라 실효성이 없는 정부 비판에 그쳐 미디어 양화법을 무비판적으로 따른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속하다고 치부되어 사법권에서 눈엣가시로 여기는 주간지는 유일하게 정력적으로 반대 캠페인을 벌였지만 그 캠페인도 일단 제정된 법 앞에서는 출판과 검열·압수의 악순환을 겪을 뿐이다.[footnote]Ibid. p. 16.[/footnote]

  유감스럽게도 도서관 법 따위가 나올 수 있을리는 없으므로 앞으로 10년 후, 우리는 다시 한번 암흑기를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빠르게 인터넷이 발달하였으나, 정치계와의 조율 실패로 빅 브라더를 허용하고만 사이버 펑크 시대를 맞은 세계 첫 국가[footnote]http://www.zdnet.co.kr/news/network/etc/0,39031057,39171272,00.htm[/footnote]가 되겠지.

토마토

  요새 토마토를 자주 먹다보니, 어째서 토마토가 낭자한 고기와 비견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상태가 좋은 토마토는 내부가 튼실하지만, 조금 상태가 나빠진 토마토는 잘라놓으면 내부가 젤 같이 생겨 흐물흐물 떨어져나간다. 이렇게 생긴 토마토는 혀에서 굴러가는 것도 느낌이 꽤나 불편한데 이 느낌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마치 동물 내장 흘러내린 것 같다는 사유가 들은 것이다.

  나도 이제 잔인한 묘사 앞에서 토마토를 못 먹게 될까?

  <공의 경계>를 보며 토마토를 먹다 문뜩 이 시리즈를 볼 때마다 토마토를 먹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이를 통해 최근 토마토를 먹으면서 토마토와 고깃 덩어리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됨.

보호된 글: 자각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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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머그 댓글 보고 있자니 너무 답답해서.

  케이머그에 윈도 서버 2008 RC가 공개되었다는 뉴스가 떳길래, 장소를 잘못잡은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어 눌러보았는데…….[footnote]케이머그 – 화제의 뉴스 1232번[/footnote]
  아무리 몇십년 전통의 안전성 어쩌고저쩌고해도 MS가 무지막지한 진보력을 갖춘 파워코딩 집단이라는 것과 IT의 발전엔 기여하고 있는 정도는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도시를 강건히하기 위한 성채 건설자라기 보다는 성채를 부수고 도시를 확장하는 설계자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유수한 전통과 독점에 반대하는 천재들이 오픈소스 진영에서 도시의 견고함과 안정된 삶을 자랑한다해도 MS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확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더욱 굶주려하며 보다 나은 내일이 있다 믿으며 눈에서 빛을 내며 달려들 뿐이지요. 상대 진영을 무너뜨리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목적도 아니고, 그럴 이유 또한 없습니다.
  원래 소프트웨어 업계는 서로 영향을 받으며 성장을 해나가는 겁니다. 코드에 관한 특허도 아니고 겨우 휴지통이 어쩌니, 쉘 스크립트를 유닉스를 그대로 전승받았다느니, 디렉토리에 의한 트리 구조가 같다느니, 정말 사사시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SMB나 .Net & C# 등의 아름다운 구조를 리버스 캐삽질로 *nix에 이식하려 캐고생하며 노력하고 있는 분들은 *nix진영에 숨어들은 MS빠돌이에 따라하기만 하는 무능력자입니까? 우리가 자랑해마지 않는 X도 지금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술을 이식하고 영향을 받아왔는데요. 재규어 때 까지만해도 메뉴를 누루면 모든 작업이 멈추는 멀티태스킹도 못할정도록 열악했고, 자랑해마지 않는 타임머신 기능조차도 (굳이 자존심 자극해서 말해보자면 윈도에는 옛날부터 있던 기능을)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던 기술을 이번에 일반인이 이 기능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예쁘고 가편하게’ 꾸며서 OS에 넣어놓은 것입니다.
  게다가 요즘 애플이 계속 내놓고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보면 서드-파티의 씨를 말리고 모든 체계를 독접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없이 많지만 한 예를 들면, MS의 윈도에서도 MS오피스가 주를 이루게 된 것이 윈도개발사인 MS가 오피스 프로그램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맥OS에는 그런게 없어서 여러 업체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었는데, 이번에 애플이 오피스 프로그램에 도전해서 회사들 와르르 무너지게 생겼습니다. 서드-파티가 할 일을 하나둘씩 삼키며 독점해나가고, 끼워팔기까지하고 있는게 애플입니다(뭐, 능력이 되니까 하는거겠죠. 원래 회사 사는 법이 그런 법이니 따로 왈가왈부할 말은 없습니다). 법정공방이 없는 것은 단순히 사회적 약자에 속하기 때문에요.
  여러분 빠는 빠일 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플 위신 세워줘 봤자 우리 인간 대부분이 그렇듯 말없이 웃으며 도움만 받고서는, 고마워하지도 뭔가를 주지는 않을 뿐입니다. 시원해지자고요. 우리는 애플의 엄연히 고객입니다. 웃어주기만 해서는 뭔가 바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랏? 말이 삼천포로 빠졌네.

미안해

  잊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만 잊혀져만 가는걸까. 인간의 의식은 왜 육체에 얽매혀 있는걸까. 미안해, 나의 사물아. 미안해요, 나와 만난 이들이여. 자꾸만 잊어서 미안해요.
  분명 무언가 의미가 있어 이 한구석에 녀석을 놓았을텐데, 이제는 아주 관련된 아주 짧은 정보만이 떠오를 뿐. 그래서 ‘아… ‘필요’없구나’ 싶어 하나둘 정리해나지만, 자꾸만 미안하기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더욱 생각한다. 또 생각한다. 흐리흐리한 이유들이 떠오른다. 이 녀석은 왜 여기 있을까 어떤 녀석일까하는 이유들. 하지만 모아둔 이유만은 기억나지 않아. 마침내 제 손으로 일찍이 떠났어야할 다음 세계로, 분해와 안식의 길로 이제와서야 내팽개친다. 그렇게, 문을 열기 위해 보관한 열쇠를 어디의 열쇠인지조차 잊어버린다.
  가끔 우연히도 잘 맞춰내서(이유를 모르고도)나, 조금 특별해서 여러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다. 나를 그 때 그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게 해준다. 사물과 함께 해온 나의 기쁨, 즐거움, 아픔. 진하게 묻어나온다. ‘그나저나 이 물건은 왜 놔두었을까?’ 다시 의문은 떠오르고, 일단 나는 아직은 문을 열 수 있어 기쁘니 자리가 부족하지마는 다시 고이 잠재운다. 언젠가는 이 열쇠도 어느 문인지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다. 단지 열쇠기 때문에 보관한 것인지, 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이미 구별하지 못하니까.
  미안해요. 모두들. 나는 잊고 싶지 않아요. 모두와 나눴던 대화, 웃음, 슬픔 그리고 분노 조차도, 그저 담담히… 아픈 가슴과 목언저리를 붙잡고서 한 발식 내딛고 싶은데, 이 우주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의식도, 사물도 세월이라는 우주 팽창에 따른 세월의 무게는 견디지 못합니다.

바라보다

아무것도 살아있을 수 없는 공간을 바라보며 어째서 우리는 생명의 벅찬 감동을 느끼는가? 그것은 희망, 부질없는 꿈?

article에 페이지 넘버링을 하자!!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article_rep_desc에 대한 것입니다.
 텍스트의 나열과 가로 읽기, 흘려 쓰듯이 아래로 내려가며 항목을 나열하는 현재 웹의 구조상 내용물이 많아지면 짜증나게도 치렁치렁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제가 니들웍스 홈피에서 TC에 대한 설명(경험과 생각을 보관하고 공유할 수 있는 설치형 도구)를 보고 늘 생각했던 것이 내세우고 있는 바에 비해서는 지식을 보관, 관리하기가 그닥 유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로 짧은 일기식의 글을 쓰는 블로그에는 충분히 편리하고 여러 기능을 지원해 강력하긴 하지만 보관과 정리에는 아직까지 그닥 딱히 뛰어나진 못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텍스트 길이만 많아져도 TC에서는 이것을 일괄적으로 한눈에 보며 수정을 하기가 매우 불편하고, 서사가 길어진 만큼 글쓴이는 아주 단한 리치텍스트포맷만 지원하는 워드프로세서(창의 크기 조절 정렬의 방식 등)에 비해서 점점 효율이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한 가지 기능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아티클 자체에 일정한 크기를 지정해서 그 크기 이상 내용물이 길어지면 쪽 수를 매겨서 누르면 (비동기 방식으로)넘겨가면서 볼 수 있는거죠. 현재의 나열하기 방식으로는 아무리 잘 꾸며도 글이 길어지면 다른 엔트리를 보러 내려가기가 무지 힘들 뿐 아니라 한번에 여러 엔트리를 볼 수 없습니다([footnote]http://www.blogin.com/blog/main.php?datX=00679684&keyZ=W7+swOe80ryzXcO1u+fAx8H9[/footnote]) 그래서 언떤 블로거의 경우에는 페이지에 한 엔트리만 표시하는 분도 있으며, 요즘에는 그러한 스킨도 유행하는 듯 하더군요. 스킨 구해볼라치면 다 1page 1entry형식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more…less…’기능([footnote]http://www.blogin.com/blog/?datX=00679684&keyX=numr&keyY=00586659[/footnote])이 나오긴 했지만 솔직히 엿부족이어 보입니다. 게다가 이 기능은 모어를 누르면 결국에는 페이지가 늘어나게 되니까요. 그러나, 제가 고안한 이 방식을 사용가능케 한다면 글이 길어도 읽기아 충분히 가용한 엔트리 두 개를 동시에도 올릴 수 있지 않은가 하네요.
 그런데, 이와같이 표현하면 footnote플러그인 같은 경우는 사용 곤란하니까 아에 TC 정식 기능으로 떼어서 같이 출력되도록 해야겠군요. 엇. 그것도 멋지겠네요. footnote의 치환자가 독립적으로 생긴다면 꼭 엔트리마다 하나씩 나올게 아니라 사이드바처럼 공간이 하나 들어서고 거기에 주석이 표시되고요(물론 한 쪽에 표시되는 엔트리 수 만큼 선택해서 열 수 있는 단추가 생기겠지만;;;).
 TC에서 글을 쓸 때 에디터 창을 두 개로 나뉘어서 보면서 왼쪽 면 글이 다 차면 자동적으로 오른쪽을 채우는, 한 번에 두 면 보며 편집하기가 구현되면 편할텐데 무지 어렵겠지? 라는 망상에 가까운 슈퍼 프로그래밍의 결정체를 생각하다 또 다른 생각이 들어서 글을 남깁니다.
 뭐, 아티클에 넘버링 얘기도 현재로썬 망상에 가까워 보이긴 합니다만. -_- 이런 멋진 기능 기대해보며…….

벤자민 리벳 실험

  사람이 의식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고서 의식한다면[footnote]http://dory.mncast.com/mncHMovie.swf?movieID=10046172320070813183005&skinNum=1[/footnote]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이 위대한 사진들이 찍힐 수 있었던 이유는…….  의식의 저편, 존재의 전과 존재의 후가 함께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있어져 있어, 피사체와 촬영자와 저편에서 기다리는 존재들이 무의식 속에서 소통하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잡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라이오스님의 말씀[footnote]http://www.joysf.com/zboard/zboard.php?id=CLUB_SF&no=4009[/footnote]처럼 분석하는게 훨씬 정연하고 옳아 보이지만 그래도 꿈을 꿔본다.
  서로 충돌하면서도 서로 올바른 길을 찾아 나아가려는 우리를 지켜봐 주고 있는, 성장한 존재와 이 세상을 떠난 존재가 막연히 이어져 있다고 말이다. 모두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저편에서.

sound Fes.

  땅을 타고 달려오는 울음의 운에 심장을 맞춰. 발을 동동 구르고 좌우로 흔들며 무릎에 전도된 울음은 어느새 몸 전체로 달린다.
  닿을래야 닿을 수 없는 손.
  밴드가 원하는 것은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악기를 다루고 목소리를 외치는데 집중(혹은 열중)하는 만큼 동시에 열광해주기를 바란다. 다만, 이보다 어려운 일이 있나? 동시성이라는 것 말이다.
  뭔가 즐겁고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고 말야, 자신의 머리를 쥐고서 노래를 듣는 사람.
  울음은 척수를 타고 심장을 지나쳐 어깨로.
  상대의 어깨에 손을 올려, 올라온 울음이 팔을 통해 공평하게 나눠져 서로를 동조시킨다.
  좋은 얘기만 적다가 나쁜 말하기 뭐하지만, 같은 마음이 되는듯한 시간은 잠시 뿐. 서로를 밀치고 앞으로 나아가. 손에 쥔 쓸모없는 것은 버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결국 필요한 건 한줌의 천재인가. 강하게 그들을 묶어둘 자만이 필요한걸까?

  사실 지난 29일에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친구 녀석이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는 바람에 숨은 고수들 노래는 거의 못들었네요. 음이 들리기 시작할 정도롤 근처를 걷고 있을 때는 포츈쿠기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진행이 한 시간 정도 늦었더군요. 으음.. 깜짝 게스트로 빅뱅인가가 나왔는데 유명한 TV연예인인지 여자들 목소리가 갑자기 폭발하더군요.
  저는 매우 안타깝께도 다음 날 바쁜지라 다음을 기약하며 22시에 자리를 떴습니다.
  친구는 같이 들어간지 30분도 안되서 놓쳤는데 돌아가는순간까지 못찾았습니다. 녀석은 2시까지 있었다는데, 녀석은 돌아가다 차가 끊겨서 노숙. 얼어죽는 줄 알았다네요. -_-
  그래도 저도 같이 DJ와 여러 사람 춤추는것도 보다 왔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에는 짧은 치마에(한강 옆인데) 가볍게 차려입고 춤추는 사람들이 기묘했는데, 아마 밤이 깊어서 나올 DJ 때문이었겠죠.

new world. Namarie.

블로그인에서 옮겨올 때 쓴 글

(초략)
거의 50에 이르는 키씨드가 490년 알베기도의 평원에서 출발하여 위대한 줄무늬 모양의 사막으로 항해를 떠났다. 계절 폭풍인 차큼’핫을 타고 불타는 모래를 휩쓸고 지나면서. 최초의 이주집단이 후논 산맥의 기슭에 도착했을 때는 고작 17가문밖에는 남지 않았으며, 그나마 그들도 여행 중 몸이 약한 가족들을 잃었다. 후논 산맥을 넘어가면서 다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편하고 안전한 길로 인도할 인도자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독이 있는 물, 떨어지는 암석, 갈증, 그리고 도마뱀들 때문에 많은 희생자를 냈다.
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최초의 이주자들은 후논의 불타는 빨간 계곡에 도착했을 때 절망에 빠져 더 이상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이민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도자였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그날 마지르 팍투는 틀림없는 지도자였다. 그는 기둥 위에 서서 사람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그는 말했다, “바다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아직도 사막기슭에 정박되어 있을 사막용 돛단배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설에 의하면, 그 순간 한 마리의 새가 그들 위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나타났다고 한다, – 뜨거운 태양의 주위를 도는 바다의 정령이.
(중략)
가장 힘들 때가 되면 누군가가 반드시 자신들의 키씨드의 좌우명을 되풀이 할 것이다; “바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홈월드, 키쓰-팍투의 역사서에서 –


블로그를 시작한지 1475일. 이제 이곳을 떠나려 합니다.
—>> “바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


갈라드리엘의 애가. Nama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