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로얄을 이번에서야 보게 되었다.
예전에 이 영화가 최악의 상 중 하나를 받았다길래 사람들이 원하는 제임스 본드는 역시 인텔리 인텔리전스 에이전트인가보다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사람들의 그런 기대는 진짜 더글라스 세븐의 모습이 아닌 듯하다. 사람들은 서서히 쇠퇴하며 추락해온 총 조차 제대로 겨눌 줄 모르는 날아오는 어쩔 줄 모르는 제임스 본드가 더글라스 세븐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고 나는 감히 말하겠다.
절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힐 수 없는 기혼 여성이 편한 작업남.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의(요새의) 본드처럼 임무가 부업이고, 여자가 본업인 잠자기 바쁜 마치 파일럿 같은 잘나가는 에이전트가 아니다. 이번의 그에게 있어 여자는 임무의 연장선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는 단련된 육체와 판단력과 주의력 그는 살인면허인 더글라스를 가지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여럿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더글라스 세븐으로 성장해나간다.
영화는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황홀한 여체가 춤을 추는 오프닝을 과감히 버렸다. 그리고 진짜 ‘에이전트’는 무엇이며 ‘더글라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그의 활약이 단순한 원맨쇼 뿐만이 아닌 조직의 백업에 기반해 있다는 것을 주지시킨다. 이런 점은 기존의 원맨 액션 영화가 이미 대세가 아니라 는 점에서 딱히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이 007이라는 점에서는 매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이 타협을 보고 멋진 3탄으로 돌아온 것과 같다고나 할까?
여튼 간에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는데, 마치 새로운 해석으로만 보이는 이번 편이 사실은 ‘매우 고전적인 007’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동료만 믿고 굳이 본드가 없어도 될 것같은 곳에서도 날라리같이 날뛰기만 하는 요상한 본드가, 예전처럼 다시 접촉이나 수사를 위해서 건물에 들어설 때면 먼져 온 다른 에이전트가 그를 인도해주고, 그가 절벽으로 둘러싸인 설산에 잠입해 있다면 그를 위한 장비와 정보를 위해서 절벽까지 오르는 동료가 있는가하면 동료의 배신도 고려해야하는 것. 냉혈하고 모든 것은 분석의 대상이자 도구로 생각하는 듯 싶지만, 악인의 죽음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충격받은 사람을 말없이 위로해주고, 사랑에도 빠지는 냉혈한이 아닌 뜨거운 마음을 지닌 자로 돌아온 점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가 007 시리즈의 특별한(잘나가는 인텔리) 점이 다 없어진 여타 영화와는 다른 특별한 점을 잃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가 보기에는 잃은 것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본드의 복장이 복장이 하와이식(?) 셔츠로 시작해서 턱시도를 거쳐 마지막에는 완벽한 슈트로 탈바꿈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본드는 성장한 것이다. 예전의 본드가 그랬듯이, 자신이 미워하는 악인의 손에 사랑하는 이를 잃고서 그는 마침내 진정한 더글라스 세븐으로 거듭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