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수출이란 정말 대단해요. 세계 이곳저곳이 들썩들썩.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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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메 : 인문학으로 읽는 제패니메이션. 8장.
대부분이 느끼는 현실적(인 상황)인 보수적인 세태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시대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실 현실의 봉인 판타지라는 것은 알겠다.[footnote]Sujan J. Napier, {아니메 : 인문학으로 읽는 제패니메이션}, 임경희,김진용 공역 (루비박스, 2005), 8장-로맨틱 코미디의 카니발성과 보수성.[/footnote]
그렇다면, 나아가서, ‘보수=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면 사실, 대부분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미래를 꿈꾸는 자야 말로 진정한 리얼리스트이자 진보자인 것인가? 다수에 의해 몽상가라고 덮어씌어지고 있을 뿐. 사실은 현실을 변화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보수자야말로 이치에 맞지않는 몽상가일까?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이라 했던 것처럼.
옛 질서의 부활을 부르짖는 보수적인 욕망. 요즈음의 아니메는 더욱 더 위험하다. 신세계가 여성에게 부여한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아니메의 경우 많은 방식으로 표현 되고 있다. 재능, 변신, 마법, 공상 구현을 이룩한 신과 같은 존재) 그 능력은 남성의 능력(포용, 통찰) 안에서 안정을 되찾는다. 옛 여성성을 파고 들어 통째로 삼키려고 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이든 아니든(생각으로 떠올랐든 아니든) 간에 이러한 플롯은 어디에나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되고 있다.
뭐, 이런 결과물들을 가지고 이성 간의 세력 구도 따위로 이해하는 것은 과대한 바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아니메의 수요가 (아주 좋게 봐줘서 판타지의 회복성[footnote]John Ronald Reuel Tolkien, {On Fairy Stories}, ,6세에서 60세까지의 모든 어린이에게.[/footnote]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다수 수요자인 남성에게 상상 속의 자신에게 완벽한 히로인을 부여하기 위한 필연적이 이유로 사용됬을 뿐이겠지. 어… 그래도 문제는 이 생산물이 (모든 작품 들이 그렇듯이) 주위에 영향을 끼친다는것일까나.
나는 이 장에서 다뤄지고 있는 《시끌별 녀석들》의 전화형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시리즈가 아닐까 한다. 비록 이 시리즈가 결말이 난 것은 아니지만 매 작품의 구도는 엇비슷하다.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시끌별 녀석들》의 주인공 여성 라무는 마법의 능력을 부리는 초인이고 이곳 저곳에 능력을 사용하지만, 좋아하는 남자인 아타루를 위해서가 대부분이다. 요컨데 능력은 있지만 남자를 위해서.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주인공 여성 하루히는 자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무에서 유를 만들고 재구성 하는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능력의 발현은 주인공 남성인 콘타로(이하 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제멋대로 일어난다.
그러나, 능력에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보호가 고려되어 있어 하루히 자신의 능력이 폭주하는 것을 막는 임무는 (자신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는 수많은 유능한 존재를 가볍게 재치고서) 쿈이 맡게 된다. 그리고 그의 행동을 위해 세계의 주요한 조직 대표가(SOS단원)가 활발히 움직이며, 오히려 반하기까지(혹은 그러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쿈은 특별한 능력이나 권력이 없음에도 이끄는 자로써의 재능(성품과 직관, 수행력?)을 이용해 하루히를 통제한다. 요컨데 능력도 있고 제멋대로지만, 균형을 맞출 줄 아는 반려자에 의해 통제 됨.
일본(문화가 비슷한 한국도 포함해) 어느 젊은이도 《시끌별 녀석들》을 현실스러움으로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세기가 변했음을 알고 있다. 비록 그러한 연애물을 즐겨보기는 해도 말이다.
그러나 《스즈미야 하루히》시리즈는 다르다. 남성이 물리적 힘의 우위를 이용하여 사람(특히, 여성)을 굴복시키지 않는 성숙함을 가지게 된 것을 역이용하여 오히려 매운 주먹을 휘두루고 협박까지하는 과격함이나, 잘나가는 집안의 유능하고 유쾌하며, 호탕하기까지도 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러한 충분히 현실적인 존재와 엮이면서도(판타지적인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미 현실의 한 부분이다[footnote]아즈마 히로키, 파우스트 (무크).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footnote]) 남성이 무능하지 않으며 오히려 중요한 존재임을 부각시켜준다는 점이 시리즈가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옆으로 새서 다른 원인도 말해보자면, 가볍고 발랄한 전개를 통하면서도 즐거운 교양 철학 사고를 동반한다는 점. 이를 응용해 한 발 더 나아가 미숙하긴 하지만 미스터리 요소를 부여하여 다른 장르 선호자까지 포옹했다는 것일까나.
덕분에 가장 인기가 많은 장르의 하나인 학원물을 가장한 판타지물인지, 판타지물을 가장한 학원물인지 애매모호하게 보이긴 하지만 분명히 후자다. 에.. 아마도.
그런데…….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두 주인공의 성별이 서로 바뀌어 나왔다면 어떤 논의가 나오게 됐을까? 머리가 아파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