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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보며

  서정주씨의 시는 참으로 묘하다. 일단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그의 탁월하다 못해 천재적인 글 솜씨에 감복받아 글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잃게 끔 만든다. 그의 시를 냉정하게 바라보는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의 글은 마치 주술같다. 주술은 처음에는 그것이 진리이거나 진실로 비춰지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만 그 효력이 떨어지고 실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등을 보며’도 그렇다. 뛰어난 어휘력에 감명을 받아 “나는 이 시에 대하여 비판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냉정을 되찾음에 따라  ‘현실’이 가려지고 감춰졌다는 것을 알았다.
  먼저, 이 시는 서정주씨 6.25직 후, 조선대학교의 교수로 있을 때 쓴 것인데, 이 때가 서정주씨에게 있었던 최초의 궁핍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 시인의 순응주의적 태도와 극단적 정신주의가 오히려 있는 자의 사치로 보여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시는 절대 궁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서정주는 가난은 누더기 같은 것이고, 누더기는 벗어버리면 그만 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누더기는 이미 절대 벗을 수 없는 한 몸과 같다. 이 시는 누더기를 걸친 채 남들 앞에 서본적 없는 자의 말인 것이다.
  물론, 나 또한 누더기를 거친 채 남들 앞에 서본 적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