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독후감을 읽고서 10년 전에 읽은 책의 글귀가 떠올라 옮겨 보았다. 당시에 읽을 때는 그저 소설가의 막연한 태도를 빗댄 것일까 생각했는데, 실은 일본의 문학계의 주류 태도 혹은 자세인가 싶다.
나라는 인간이 어떤 종류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그 이미지의 뒤를 살피면 무엇이 있을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매력적인 작품을 탄생시키고자 할 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터득한 터여서 그 부분에는 결코 손을 대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나라고 하는 정신과 육체를 지닌 소설가는 그저 단순히 이미지의 수신기이며 발신기면 족하다는 애매한 지론 한 가지를 마련해놓고 자신의 소설을 써나가고 있다.
내 소설에 국한한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어떤 역할을 연출할 것인지 분명치않다. 그러나 앞으로 문학 전체의 폭을 넓히고 다양화하는 일이 좀더 차분한 형태로 소설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취해온 문학적 자세를 쇄신해야하지 않을까. 말을 꺼냈다 하면 ‘마음’을 비장의 카드처럼 사용하면서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충실히 흉내만 내고 있는 고전지상주의와는 어느 시점에선가 손을 끊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 역시 그런 작가들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생각해보는데, 일본 소설이 쇠퇴한 주요한 원인이 과연 판에 박힌 작품의 범람과, 텔레비전이나 영화 같은 가공의 세계가 소설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중들과 친숙해지기 쉽다는 점과, 편리함이란 무기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육박하는 기회가 늘어났다는 데만 있는 것일까. 한동안 그런 가공의 세계에 친숙했다가 지금은 다시 참신한 문학작품을 바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여전히 문학세계에서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한 독자들의 변화를 무시하고, 적어도 작품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믿게 하고 열중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연구를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소설가가 인생의 숙련자임을 뜻한다는 착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지, 지나치게 ‘마음’을 대상으로 한 나머지 마음에서 흘러나오는대로 정직하게 쓰기만 하면 알아주는 독자가 있을 것이라는 행복한 자세가 오히려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을 외면하게 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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